'주절주절'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4.07.30 오월
  2. 2014.07.30 귀천
  3. 2014.06.19 걷고 싶다 - 조용필
  4. 2010.08.06 영희에게 보내는 편지
주절주절2014. 7. 30. 09:58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고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은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피천득

Posted by 하늘지기76™
주절주절2014. 7. 30. 09:45

귀천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과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

                

천상병 (1970, 창작과 비평)

Posted by 하늘지기76™
주절주절2014. 6. 19. 16:58





이런 날이 있지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

내 곁에 있구나 네가 나의 빛이구나

멀리도 와주었다 나의 사랑아


고단한 나의 걸음이 언제나 돌아오던

고요함으로 사랑한다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을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불안한 나의 마음을 언제나 쉬게 했던

모든 것이 다 괜찮을거야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을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손을 품에 넣고서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을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손을 품에 넣고서


Posted by 하늘지기76™
주절주절2010. 8. 6. 15:52


2010. 08. 05. 목요일

산하


나는 네 이름을 몰라.  나는 너를 성으로밖에 모른다. 일찍 돌아가셨다는 네 아버지의 성이 박씨였기에 너 역시 박모양으로 불리운다는 사실밖에 아는 게 없지. 그러나 너를 박모라고 부르기는 싫구나. 그래서 내멋대로 네 이름을 만들어 불러 보련다.  영원할 영, 기쁠 희. 그리고 철수와 바둑이와 더불어 나의 첫 교과서에 등장했던 여자 아이 영희. 왜 남의 이름 맘대로 바꿔 부르느냐 탓하지 말기 바래. 어차피 며칠 뒤면 네 존재마저 봄눈처럼 땅에 스며 없어질 이 바쁜 세상에서 너를 조금이나마 더 머리 속에 담아 두고픈 나름의 노력으로 생각해 다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동년배의 선남선녀들이 호기롭게 들어와 메뉴판을 고르는 동안 행여나 놓칠세라 그 입술들의 움직임을 주시했을 영희야.  빵으로 할지 밥으로 할지 수프는 뭘로 하고 웰 던인지 미디움인지 소스는 뭘로 할지 음료수는 어떤 건 리필되고 무엇은 안되는지 낭랑히 읊으며 하회를 기다리면서, "손님보다 낮은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쪼그리고 있었을지 모르는 영희야. 시간당 급여 아끼기 위해 점심 시간 끝나고 저녁 준비 전까지는 ‘자유시간’을 억지로 가져야 하고, 하릴없이 거리를 방황하며 근무 시간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수많은 알바들 중의 하나였을 영희야. 물에 불어버린 네 시신을 건졌다는 오늘 아침 뉴스에 나는 또 한 번 아득한 하늘만 바라본다. 


 영희야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나 모질고 고된 꿈만 꾸다가 끝내 꿈에서 깨어나 버렸구나. 그래도 너는 이제 더 이상 “나도 옛날에 다 고생해 봤다.”거나 “젊은 애들이 눈이 높아서........”라는 가위같은 말들에 시달리지 않겠지. 왕년에 풀빵을 팔던 사람이 대통령도 되는 세상인데 결국 다 네 할 바에 달렸다는 야차같은 말에 묵묵히 고개를 조아려야 하지는 않겠지. 네 뒤에 따라붙는 “자살할 힘으로 살아야지 바보같은 것.” 따위의 야박한 소리가 귀에 꽂힐 필요는 없겠지. 



 영희야. 나는 감히 너를 이해한다고는 말 못할 거야. 이 세상의 바닥이 얼마나 냉골인지, 서울 장안 러시 아워 한가운데에서도 사막에 선 듯 사무치는 외로움이 무엇인지 나는 겪어보지 못했으니까. 네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얼마나 입술 깨물며 버텨 보려고 발버둥쳤는지, 도움조차 거부하면서 나는 꼭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될 거야 하늘 향해 종주먹을 쥐었는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단다. 하지만 영희야 나는 너를 닮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너만큼이나, 때로는 너보다 더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래서 곁에 있는 나에게까지도 희망을 일깨우는 사람들이었지.


 허구헌날 술에 취해 널부러진 엄마 다리를 주무르고 물 떠 먹이고 때론 두들겨 맞으면서도 우리 엄마 속 아프다고 국을 끓였던 아홉살 어린아이는 그래도 맑게 웃었어. 엄마도 낫고 나도 크면 잘 되지 않겠느냐며 걱정하는 이를 되레 위로했었지. 술에 찌들어 이디오피아 난민처럼 말라 버린 아버지에게 매일 두들겨 맞고 그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송두리째 빠지면서도 왜 팔목 한 번 비틀어 버리지 맞고만 있느냐는 내 질문에 어떻게 아버지한테 그래요 하면서 동그란 눈을 치뜨던 대학생은 그가 과외한 돈으로 온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20년 전 자신을 버리고 단 한 번도 찾지 않은 엄마도 엄마라고 불원천리 달려와 엄마 손을 잡아 주며 엄마 걱정 말라고, 엄마는 내가 모시고 살겠다고 다짐하던 아주머니도 있었지.   


 아무리 어두운 곳에서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영혼들, 암담하기만 한 그들의 삶 속에서 꺾이지 않고 지탱해 주기를 바라고픈 푸른 젊음들을 나는 무시로 보아 왔었거든. 그게 내 일이었거든. 영희야. 몇 번을 망설이다가, 수십번 고개를 젓다가 끝내 한강 다리 넘어 시커먼 물 속으로 떨어져 내렸을 영희야. 네 죽음은 그래서 슬프다. 내가 보았던 그 안타까운 영혼들. 그 생활의 지옥조차 뒤덮지 못했던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닥칠 미래가 네가 부닥쳤던 현실일수도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야. 그들의 대견한 웃음이 끝내는 허리 꺾인 피울음으로 바뀌고 극한 상황에서도 든든하던 의지가 한강 교각 위의 절박함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렵게 인정해야 하는 탓이야.

 

 네 시신이 한강물에 떠오른 날 이 나라 최고의 대학병원에서는 더 이상 화장실에서는 밥 먹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하던 사람들이 병원 직원과 용역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어. 네가 죽음을 셈하면서도 열심히 접시를 나르고 있을 즈음  어느 국회의원은 최저생계비로 황제의 밥상을 차릴 수 있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었지. 그리고 네가 네 수입의 3할 가까이 쏟아부은 고시원의 벌집같은 방에서 라면을 끓여 허기를 면할 때 "집 가진 가난뱅이들"을 위하여 아파트 값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았구나. 그래도 지구는 돌고 해가 뜨면 다른 날이라는데 왜 그리 성급한 선택을 했느냐고 나무라고 싶지만, 또 그래야 하지만 차마 입을 뗄 수 가 없는 것은 이런 꼴들을 목전에서 보고 귓전에서 쓸어담기 때문일 거야.  


 잘 가라 영희야. 비록 이름은 다를지 몰라도 혹여 내가 아이들하고 외식할 때 상냥한 웃음 띄우며 주문을 받은 그 젊은이일 수도 있고, 레몬에이드 더 달라는 아이의 생떼를 받고선 특별히 한 잔 더 주겠노라고 윙크하던 그 넓적한 얼굴의 아가씨일 수도 있고, 화장실 가는 길목에서 점장에게 겁나게 깨지면서 눈물 쏟던 키 작은주근깨 아가씨일 수도 있었을 나이 스물 한 살의 꽃다운, 아니 꽃보다 아름다왔을 처녀야. 이제 못 볼 꼴 보지 않고, 막막함에 멍들지 말고 평온한 곳에서 행복해라. 명복이라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속절없는 말이거니와, 그 말 밖에 해 줄 것이 없지만 그것만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 잘 가라 영희야. 


딴지사회부 산하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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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늘지기76™